당시 5공 군사정권의 폭압적 지배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고문 치사 사건으로 이어졌고, 당시 대학가는 강경한 투쟁으로 맞서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을 의도적으로 도외시 한 체 장기집권 연장 음모인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였고, 이 호헌 조치에 대한 거부감은 대학생들만의 투쟁을 넘어 전국민의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대되었습니다. 당시 대학 내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반 독재 투쟁을 참여하였고 전국의 도심은 연일 학생 시위대와 진압 경찰의 공방전이 전개되었고, 100만 명이 넘는 시위 참여 인원에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계속 합세하였으며, 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연세대 경영학과 2년) 군이 학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고, 이한열군의 주검은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6.10항쟁이고 6.29선언을 하게 된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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